★ 세계인물교양만화 who? 33권 헬렌 켈러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인물, 헬렌 켈러의 삶을 가장 충실하게 그린 최고의 교양 만화

생후 19개월에 뇌척수막염을 앓은 후 시력과 청력을 잃고, 말도 할 줄 몰랐던 어린 소녀, 주위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던 이 소녀가 바로 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삶을 산 헬렌 켈러입니다. 헬렌 켈러는 중복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회활동을 펼치며 장애인은 물론, 많은 사람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준 인물입니다.

암흑에 빠진 어린 소녀, 세상과 소통하는 빛을 찾다
시력과 청력을 잃은 헬렌 켈러가 장애를 극복하고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빛을 선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중복 장애를 앓고 집안에서 응석받이로 자란 헬렌 켈러 앞에 구원의 손길처럼 나타난 앤 설리번 선생님은 그동안 헬렌을 장애를 앓는 가여운 아이로만 대했던 가족들과는 달리 호통치고, 때려가며 수화를 가르치려 노력합니다. 진전없는 일상에 하루하루 지쳐갈 무렵, 마당의 펌프에서 쏟아지는 물을 통해 기적처럼 ‘water’라는 단어를 이해한 헬렌 켈러는 단어와 문장을 익히고 손 수화와 발성을 배워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점자를 익히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 배움에 대한 욕구가 생긴 헬렌 켈러는 특수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은 후에는 비장애인들이 다니는 일반 학교에 다니게 됩니다. 헬렌은 시청각 장애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렸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 점자로 된 책을 읽어야 했고, 수업 내용을 앤 설리번의 손수화로 전달받아야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그때그때 필요한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워 책 한 권의 내용을 통째로 암기해가며 공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헬렌 켈러는 어떤 어려운 난관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스스로 다독이며 어려움을 헤쳐나갔습니다.

시청각 장애인 최초로 학사 학위를 받은 헬렌 켈러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세상을 향해 외친다
헬렌 켈러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여학생을 위해 개설한 래드클리프에 입학해 시청각 장애인 최초로 학사 학위를 받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헬렌 켈러는 작가로서의 길을 걸으며 자신을 가로막는 장애와 사람들이 자신에게 갖는 편견에 맞섰습니다. 또한,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 당시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던 차별에 반대했습니다. 사람들은 헬렌이 스스로 그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같은 아픔을 가진 장애인들조차 헬렌 켈러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36년 10월 20일, 평생의 스승이자 동반자였던 앤 설리번 선생님이 눈을 감습니다.
하지만 헬렌 켈러는 주저앉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끝내 꺾지 않았습니다. 비록 헬렌 켈러의 주장은 비난을 받았지만, 오래지 않아 헬렌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두었고,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인종 차별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장애는 자신의 인생에 절대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끈기와 인내로 장애를 이겨낸 헬렌 켈러, 여러 책을 출간한 작가로, 세상의 차별을 없애고자 노력한 인권 운동가로서의 헬렌 켈러의 삶은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강한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줄 것입니다.
‘인물 백과’ 코너에서는 헬렌 켈러의 성공 열쇠,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 헬렌 켈러의 책 등에 대한 지식을 사진 자료와 그림을 활용해 알려 줍니다. ‘논술 마당’ 코너에서는 퀴즈, 역할 바꾸어 생각하기, 점자 읽어보기, 편지 쓰기 등의 다양한 독후 활동을 통해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하도록 돕습니다.

★ 전 세계 어린이와 학부모를 감동시킨 위인전 『who?』시리즈
초등학생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첫 손에 위인전을 꼽는다. 한 사람의 생애를 다루는 위인전은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희노애락 등 인간이 겪는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또 위인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도록 역할 모델을 제시한다. 다산어린이에서 출간된 『who?』시리즈는 이런 위인전의 의미를 가장 잘 살린 책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평생을 간직할 큰 꿈의 밑그림을 그리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동안 흔들리지 않는 큰 꿈을 심어 주어야 한다.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처럼 스스로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이때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who?』 시리즈는 어린이들이 담고 싶고 되고 싶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침반과 같은 책이다.
『who?』 시리즈에서 다루는 위인은 분야, 국가, 여성과 남성, 인종을 초월한 균형 잡힌 시각을 길러준다. 학부모와 선생님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설문 조사와 교과서 분석 등을 통해 선정된 인물들을 만나면 세상을 보는 올바른 시각과 균형 잡힌 가치관을 기를 수 있다.

★ 나와 닮은 위인들의 어린 시절을 담은 책
『who?』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위인들의 어린 시절을 충실히 담았다는 점이다. 『who?』시리즈는 인물의 어린 시절과 실패, 좌절과 극복의 순간을 여과 없이 담아서 어린이들이 나와 다르지 않은 위인들의 이야기를 보며 용기를 얻고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한다.
힐러리 클린턴은 어린 시절 지독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이 시대 최고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상한 행동 때문에 구제불능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아이였다. 21세기의 가장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기업가로 추앙받는 스티브 잡스가 입양아로서의 아픔을 딛고 일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처럼 아이들은 『who?』시리즈를 통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세계적인 리더들을 보면서 힘을 얻게 된다.

★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현대 인물들의 이야기
『who?』시리즈는 아이들이 쉽게 교감할 수 있는 현대적 인물들로 골고루 구성되어 있다. 버락 오바마, 스티브 잡스, 제인 구달, 오프라 윈프리, 워렌 버핏, 조앤 롤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에 공헌한 21세기 실존 인물과 역사 인물로 구성된 라인업은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인물들과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생함을 전해 주고 그들의 리더십과 성공 철학을 배울 수 있다. 이는 시리즈가 아이들뿐 아니라 일상에 바쁜 아빠와 엄마들까지 즐겨 읽게 만드는 힘이다. 어린 시절 동물을 좋아해 친구들과 자연 관찰 모임을 만들고 돈을 모아 늙은 말들의 목숨을 구했던 제인 구달, 여섯 살 때 처음 동화를 쓰고 정부 보조금을 받아 생활하면서도 상상력을 발휘해 첫 소설을 썼던 조앤 롤링, 말더듬이에 구제불능 장난꾸러기 낙제생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가 된 처칠 등 『who?』 시리즈에서는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인물들의 어린 시절을 만날 수 있다. 위인들이 어린 시절 겪은 좌절과 아픔, 그것을 딛고 일어나 꿈을 이뤄 가는 과정을 읽으면서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위인들의 어린 시절에 공감하면서 인생의 꿈과 목표를 스스로 세우는 아이로 변하게 된다.

★ 교과 연계 학습이 가능한 입체적 위인전
『who?』시리즈의 또 다른 특징은 일반 위인전과는 달리 교과 연계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본문에 들어 있는 인물백과 코너를 통해 인물에 대한 배경 지식과 시사 상식, 교과서 지식까지 다방면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권말에는 독후 활동 코너를 더해 사회, 과학, 논술에 이르는 통합 교과 학습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전 학년, 전 과목에 걸친 다양한 교과 연계로 학습 효과를 주어 학교 수업의 몰입도와 학업 성취도를 높여 준다. 아이들 스스로 책을 읽고 나서 독후활동을 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who?』시리즈는 학부모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 세계 시장에서 먼저 인정받은 『who?』 시리즈, 이제 한국을 평정하다
『who?』시리즈는 이미 미국의 뉴저지주 포트리 초등학교에서 수업 부교재로 채택되며 화제가 되었다. 국내에서 발간된 교양만화로는 최초로 책의 교육적인 면과 인성적인 면을 철저하게 검토하는 미국에서 초등학교 교재로 채택되어 역사 수업과 영어 수업에 함께 사용되고 있다. 『who?』시리즈의 차별화된 내용과 수준은 미국, 중국을 비롯한 세계 학부모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시리즈가 완간되기 전에 이미 6개국에 수출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영문판으로도 나온 『who?』시리즈는 생생한 생활 영어를 담은 내용과 원어민 성우들이 녹음한 오디오 CD가 함께 있어 학부모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인정받은 콘텐츠를 영어로도 만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평을 듣고 있다. 또한 어플로도 출시되어 줄곧 판매 1위에 올라 어린이는 물론 성인들에게서도 인기다. 세계 시장은 물론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시리즈는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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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심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이 소식은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다. 무려 북한을 30여년 동안 철권 통치한 인물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사건으로 깊게 각인돼 있는 인물이다.

김정일을 말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둘이 손을 맞잡고 남북 평화를 외치는 사진은 여전히 선명하게 다가온다. 햇볕정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기획한 통일 정책이었다.

‘who?시리즈-김대중’(다산어린이/대표 김선식)은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투쟁했고 대통령이 되어선 남북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 생애를 그리고 있다.

이 책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 평화를 논의한 내용이 실려 있다.

김대중은 대통령 직에 오르자마자 외환 위기라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자 1997년 11월21일 경제부총리는 IMF(국제통화기금)에 2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김대중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외환위기 극복이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달러를 빌려왔지만 간섭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김대중은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쳐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빌린 돈을 빨리 갚기로 한다.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은 팔순의 노인이 평생 간직해 온 금반지부터 갓난아기의 돌반지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이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국민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김대중 정부는 빠른 시일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게 됐다.

그가 대통령이 된 지 3년이 지났을 때, 경제 사정이 안정 궤도에 오르자 김대중은 남북문제에 힘을 쏟았다. 평화와 화합을 바탕으로 한 대북 정책인 햇볕 정책이 대표적이다. ‘햇볕 정책’이란 따뜻한 햇볕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만드는 이솝우화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김대중 정권의 온화한 정책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세력도 있었다. 남한이 햇볕 정책을 펼치는 중에도 북한의 무력 도발은 그치지 않았고, 핵 개발을 강행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실현하고 앞으로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평화와 도약을 통한 자랑스러운 한반도를 이룩하는데 온 힘을 다합시다.”

북한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의 남북 화해와 평화적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다수 국민의 지지로 김대중 정부는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이 가능한 분야부터 적극적으로 정책을 실현시켜나가기 시작했다.

1998년 6월16일 정주영 회장은 소 500마리를 북한에 보냈고 분단 이후 최초로 배를 통한 금강산 관광 사업이 시작되었다. 또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6.25 전쟁 때 북에 가족을 두고 떠나온 사람들은 ‘반세기만의 가족 상봉’에 통곡했다.

드디어 2000년 6월13일 분단 55년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진다.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난 것이다.


“반갑습니다.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김정일)

“나는 원래 겁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김대중)

- ‘who?-김대중’ 중에서




두 사람의 만남 이틀 뒤 남북공동선언문이 발표됐다.

김대중의 평양 방문 소식은 전 세계적으로 보도되었고 이후 김대중은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00년 10월,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및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21세기 첫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는 최초의 노벨상 수상이었다.

그는 남과 북의 관계 개선에 주춧돌을 놓았다고 평가되는 ‘햇볕정책’을 실현시킨 대통령이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장에는 ‘햇볕정책’을 상징하는 해바라기로 온통 장식됐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남북 관계가 다시 냉각될 것을 예감한 것인지 김대중 대통령은 눈을 감기 전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 2년 뒤인 2011년 12월17일 8시30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사망했다. 그의 죽음 이후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의 강대국들은 국제 정세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민들은 남북 관계가 악화돼 최악의 상황으로 번지지는 않을까 예민하게 언론 보도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더욱 간절해지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가 아닐까.

부디 그가 전 생애를 걸고 힘겹게 이룬 민주주의와 남북 화해의 불꽃이 꺼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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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이며 일본의 CEO가 존경하는 CEO로 뽑힌 손정의. 그는 재일 한국인 3세로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계 일본인 기업인 중 한 사람이다.

‘who?시리즈-손정의’(다산어린이/대표 김선식)편에서는 동양의 빌 게이츠 혹은 제2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리는 손정의의 기업 철학과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다.

●가난한 ‘조센징’ 아이

손정의는 1957년 8월11일 일본 규슈 지방의 사가 현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가난한 한국인들이 모여 살았고 그 중에서도 손정의 집은 선로 옆 공터에 양철 지붕과 판자로 만든 집이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일본에서 살았다고 해도 한국인들은 그저 일본인에게 외국인이었고, 차별은 당연시 여겨졌다. 재일 한국인의 운명은 어린 정의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가혹했을 것이다.

너는 눈물을 흘린 적이 있어? / ‘당신은’ / ‘너는’ / 눈물이라는 것이 얼마만큼 소중한 것인지 알까?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 나타내는 찰나적인 것이다.

‘눈물’ / 눈물 같은 거 흘리면 부끄럽니? / 그래도 모든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싶어하고, / 흘리지는 않아요.

‘순백의 진주’ / 그것은 인간으로서 귀중한 것이다.

‘귀중한 것은 뭔가요?’

그래도 너는 부끄럽니? / ‘힘들 때’ / ‘슬플 때’ / 그리고 ‘분할 때’ / 너의 눈물은 /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겠지.

그래도 너는 부끄럽니? / 그 눈물 속에는 너무도 잔인한 / 눈물도 있단다.

그것은 / ‘원폭 비극의 괴로움으로 뒤덮였을 때의 눈물’ / ‘흑인 차별의, 분노의 눈물’ / ‘손미 마을의 대학살’

세계 속의 사람들은 지금도 그리고 / 미래도 계속 울겠지.

이런 비극을 호소하기 위해서라도 / 눈물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너는 부끄럽니? / ‘눈물은 귀중한 거야’

- ‘눈물’, 손정의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시

 

초등학생이 쓴 시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시 ‘눈물’에는 ‘눈물’로 표현되는 당시의 비극과 무게감 있는 테마들이 등장한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슬픈 현실을 이미 직감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훗날 그가 통 큰 기부로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데 앞장 선 데에는 부당한 현실 앞에 호소하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것’이 ‘귀중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손정의는 한국인으로서 반드시 일본에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꾼다.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그는 화장실에서까지 공부할 정도로 몰입했다. 미국인들보다 빨리 월반을 해 고등학교 과정을 일찍 마치고 대입 자격시험에 도전한다. 하지만 영어가 문제였다. 손정의는 일본에서 고생하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시험에 합격해야만 했다. 그는 외국인이 영어로 된 시험 문제를 미국 학생과 동일한 조건으로 푸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면서 시간을 더 주고, 영어 사전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손정의의 용기에 감탄한 교육 위원회는 손정의의 부탁을 들어줬다. 결국 손정의는 당당히 대입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그의 용기와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스스로 생활비를 모아야 했던 손정의는 발명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발명한 음성 전자 번역기는 일본에서 최초로 계산기를 개발한 기업인 샤프의 눈에 띄었고 손정의는 높은 금액을 받고 자신의 발명품을 팔았다. 이 음성 전자 번역기는 샤프의 대표 상품 중 하나인 전자수첩의 원형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손정의는 ‘유니손 월드’라는 회사를 세웠다. 그는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스페이스 인베이더’라는 게임을 미국에 소개한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게임기는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손정의는 일본에서 사업가로 성공하리라는 자신의 꿈을 위해 유니손 월드를 직원들에게 맡기고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소프트뱅크 그룹의 회장 손정의(오른쪽)와 트위터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

●인터넷의 중심을 아시아로 옮기다

일본에서 인터넷 열풍이 불며 신흥 인터넷 기업들이 생겨날 때 손정의가 세운 소프트뱅크는 일본 야후를 인수하고는 엄청난 주가 상승을 기록하며 부를 축적했다. 그는 빌 게이츠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갑부가 된다. 스티브 잡스가 죽었을 때는 마크 주커버그와 함께 ‘ 스티브 잡스 후계자’로 지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스티브 잡스처럼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 아니었다. 화려한 쇼맨십으로 과장되게 연출하는 법도 없었다. 다만 그는 성실하고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기업가였다. 무엇보다 그는 30년을 넘어 300년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다. ‘국민이 있고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기업이 존재한다’며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사업을 하겠다는 그의 철학은 일본에서 일어난 대지진 때 빛을 발했다. 전 일본인이 슬픔에 잠겨있던 때에 그는 소프트뱅크 그룹의 이름으로 10억엔(130억원)을 기부했다. 자회사 야후 재팬도 3억엔(약 38억원)을 냈다. 손정의 개인은 따로 100억엔(1300억원)을 기부했다. 그는 2011년부터 은퇴까지 그룹 대표 보수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50을 조금 넘었는데 말이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하라 소이치로는 손정의를 가리켜 ‘일본 경제를 침체에서 구할 영웅’이라고 말했다.

“저의 국적은 일본도 아니고 한국도 아닙니다. 인터넷입니다. 인터넷 안에는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인터넷의 중심을 아시아로 옮겼고 그것이 아시아 사람들의 더 나은 생활에 공헌하기를 바라는 손정의는 지금도 정보 혁명을 통해 사람들의 행복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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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은 영화사의 가장 위대한 배우이다. 찰리 채플린은 콧수염 연기와 슬랩스틱을 통해 웃음과 눈물로 세계를 사로 잡았다.

‘who?시리즈-찰리 채플린’(다산북스/대표 김선식)편은 세계적인 명배우 찰리 채플린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영화로 세상을 바꾼 명배우 찰리 채플린은 1889년 4월16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이름은 찰스 채플린이었다. 춤과 노래를 곁들인 풍자적인 통속 희극을 하던 찰리 부모는 불화 끝에 헤어졌다.

어머니는 주연배우는 아니었지만 여러 무대에서 조연을 맡아 공연했다. 어머니는 찰리와 시드니를 희망으로 여기고 살았다. 배우인 찰리의 어머니는 집에서도 연기 연습을 했다. 찰리는 어머니의 연기하는 모습과 무대의상을 수선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연기를 익힐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찰리의 어머니는 후두염에 걸리게 돼 무대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청중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무대감독은 어머니 대신 노래를 잘 부르는 찰리를 내세워 이 위기를 수습하려 했다.

찰리는 어머니 대신 무대 위에 섰다.

찰리는 물만난 물고기처럼 춤과 노래를 선보이며 무대를 압도했다. 이 때 나이가 겨우 다섯 살이었다.

어머니의 병은 더욱 악화 되고 찰리의 집안은 더욱 가난해 졌다. 어머니는 생활고 끝에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찰리는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됐다. 아버지와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회복되자 마자 찰리를 찾았다.


이렇듯 대배우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어린 시절부터 굴곡이 많았다. 이런 어린 시절의 가난과 시련이 불세출의 대배우로 만든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빈민구호소의 모진 학대 속에서 명배우의 꿈은 무르익어 갔던 것이다.

찰리 채플린은 일생은 성인이 되어서도 파란만장했다. 어린시절이 주변의 환경 때문에 어려웠던 것처럼 커서도 그를 둘러싼 여러 조건들은 만만치 않았다.

찰리 채플린은 세계적인 대전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제1,2차 세계대전은 찰리 채플린의 연기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 전쟁만이 그를 위협한 것은 아니었다.

전쟁못지 않게 이데올로기도 인생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나뉜 세계에서 찰리 채플린은 고민했다.

찰리 채플린은 그런 환경속에서 굴하지 않고 자신의 창작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어깨총’, ‘키드’, ‘황금광시대’, ‘시티라이트’, ‘모던타임스’ 등의 영화에 출연해 자신의 연기 실력을 전세계에 보여줬다. 그는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물결 속에서 유영하며 새로운 캐릭터를 계속 창조했다.

‘위대한 독재자’에서는 히틀러를 상징한 독재자을 완벽히 소화해 냈다. ‘살인광 시대’에서는 실업자로 전락한 은행원을 복수의 화신으로 잘 그려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는 독재자를 그리든 살인마를 그리든 심각하지 않다. 코미디라는 장르위에 슬픔이나 역경을 섞어 놓는다.

‘뉴욕의 왕’이라는 작품에서는 미국 사회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서 노력했고 영화 ‘키드’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기도 했다.

채플린은 배우로만 살지 않았다. 그는 영화감독으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채플린은 뮤추얼 영화사에서 16개월간 무려 12편의 영화를 찍었다. 특히 첫 번째 영화 ‘매장감독’은 크게 성공을 거뒀다.

영화적으로도 찰리 채플린은 큰 업적을 많이 남겼다. 무성영화 발전에 이바지했고 슬랩스틱 코미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또 영화에서 캐릭터가 중요하다는 의식을 영화인들에게 심어주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은 영화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하며 언제나 희망을 불어 넣어줬다.

영화 ‘라임라이트’는 채플린이 자신의 배우인생을 조명하기 위해 만든 영화이다. 라임라이트는 무대조명이라는 뜻이다. 채플린은 이 영화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봤다. 75세에 자서전으로 생을 정리하고 1975년 기사 작위를 받는다.

1977년 88세로 스위스에서 영화의 한 장면에서 잠자듯이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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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데 마법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에 이미 그 힘은 존재합니다. 우리에겐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 조앤 롤링, 하버드대 명예박사학위 기념 연설 중에서

척추에 특정한 단백질이 부족해 생기는 다발성경화증(MS)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 그는 딸에게 책을 읽어주던 늘 다정한 사람이었다. 훗날 그의 딸은 맨체스터 상공회의소에 비서로 취직했지만 자주 딴 생각을 한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딸은 ‘평생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주마’ 약속하며 청혼한 한 남자와 결혼하지만 결국 이혼을 하고 무일푼이 된다. 어린 딸도 있었는데 말이다.

편부모에 폭행하는 남편. 실업자 그리고 이혼녀…이것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 조앤 롤링의 이야기다. ‘who?시리즈-조앤 롤링’(다산어린이/대표 김선식)편에는 그녀의 전 생애가 자세히 그려져 있다. 조앤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꿈을 심어준 친 엄마가 불치병으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조앤의 엄마는 조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고, 앉아있을 수조차 없을 때도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어머니의 죽음은 크나큰 슬픔이었지만 조앤은 긍정적인 가치관과 따뜻한 사랑을 배웠다.

특히 “이 책이 아니었으면 해리포터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조앤은 ‘작은 백마’의 팬이었다. 엘리자베스 굿지의 작품인 ‘작은 백마’는 영국 도서관협회에서 그 해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카네기 상’을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카네기 상 수장작은 ‘작은 백마’ 외에도 팀 보울러의 ‘리버보이’(다산어린이),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마지막 전투’ 등이 있다.

그러나 조앤은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된다. 변변찮은 직장을 얻지 못했고 심지어 쫓겨나기도 했다. 일찍 결혼을 했지만 남편은 백수로 지냈고 심지어 폭행과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조앤은 이혼을 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딸 제시카를 키우기 위해 1년 여 동안 정부의 생활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모멸감과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그녀는 틈틈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불우한 현실이 꿈을 제약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당장 꿈을 실현할 수 없는 조건이라 할지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든든한 뒷받침을 해줄만한 아무런 배경이 없을지라도,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그녀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겨우 정부보조금 10여만 원으로 생활하던 시기, 그녀는 카페 한 구석에서 하루 종일 글을 썼다. 유모차에 아기를 재우고, 자신은 에스프레소 한 잔과 물 한 잔을 앞에 두고 그저 상상 속에 머물렀던 마법 소년 이야기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조앤, 회의 시간에 또 딴 생각을 하는 거야?”

“조앤, 업무 시간에 소설을 쓰다니!”

“조앤, 타이핑 속도만 빠르지 제대로 하는 게 없잖아.”

자주 공상에 빠져 직장 상사에게 무시당하고 핀잔을 듣던 조앤. 그녀가 얼마나 이야기의 즐거움에 매료돼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다. 그렇게 1995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첫 원고가 완성된다. 열두 군데 대형출판사의 거절. 천신만고 끝에 소규모인 블룸즈버리 출판사와 계약을 맺는다. 이때 그녀가 받은 선인세는 불과 1천5백 파운드. 한화로 약 2백만 원에 해당하는 액수다.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 시리즈 첫 책을 썼던
에딘버러에 있는 카페 '엘러펀트 하우
스'
 
그러나 1997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출간 당시 그 존재감이 미미했지만 여러 아동문학상을 수상하고 본격적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점점 책의 판매량이 늘어났다. 2권 ‘비밀의 방’(1998년), 3권 ‘아즈카반의 죄수(1999년)가 연이어 출간되면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인기는 그 기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4권 ‘불의 잔’(2000년), 5권 ‘불사조 기사단’(2003년), 6권 ‘혼혈 왕자 외전’(2005년), 7권 ‘죽음의 성물’(2007년)까지 이 시리즈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무려 67개 언어로 번역되고 세계 135개국에서 출간되었다. 이는 가히 신드롬이라고 할 만한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책이 지금과 같이 유명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기는 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정말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마침내 책이 출간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입니다. 내가 쓴 책이 서점에 진열되는 걸 보는 게 제 꿈이었으니까요. 내가 책을 출간한 작가라는 사실만으로도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간직했던 꿈이 이루어진 것과 다름 없어요.”




조앤은 꿈이 성공으로 이어진 것에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가장 소중히 여긴 순간은 꿈이 실현되는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꿈을 향한 열정과 포기할 줄 모르는 긍정적인 에너지는 바로 그녀의 삶을 성공으로 이끈 열쇠가 되어주었다.

가난한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떼고 이제는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작가가 된 조앤 롤링. 그녀는 부와 명성을 얻은 후 막대한 금액을 자선 단체에 후원했다. 자신의 엄마를 잃게 만들었던 질병 ‘다발성경화증’을 연구하는 학회에도 기부했다.

해리포터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듯이, 그녀의 책은 그동안 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까지 서점으로 끌어 모았고 어린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게임 대신 그녀의 책을 읽게 만들었다.

“삶에는 성취보다 더 많은 실패와 상처가 존재한다.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패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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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읽히기 전에 아이들이 먼저 집어 든다는 ‘who?’. 특히 최근 작고한 스티브잡스 편은 주 독자층인 어린이뿐만 아니라 잡스에 궁금증을 갖고 있는 성인들에게까지 주목받으며 어린이 도서 부문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출판 관계자에 따르면 어린이 도서 시장에서 어린이 위인전이 한 달이 넘게 1위를 기록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 한다.

세월이 지나도 IT의 구루라고 불리는 스티브 잡스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하다.

안철수 교수는 “출신도 학력도 보잘 것 없었던 이가,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가난한 집에 입양되어 결국 대학도 그만두어야 했던 이가 어떻게 이 시대의 영웅이 되었는가. 그것은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혁신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 정신 때문이었다. 아무도 쉽게 따라갈 수 없었던 그의 진정한 재능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것에 고도로 집중하는 열정이었다.”라며 모든 이들이 스티브 잡스의 정신을 본받으라고 충고했다.



스티브 잡스 사후 전 세계는 잡스의 열정적인 에너지에 온 마음과 눈을 빼앗겨 버렸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지 두 달이 접어들지만 여전히 서점가에선 ‘잡스 특수’가 일며, 관련 서적물이 앞 다퉈 출시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책은 단연 다산북스에서 출간한 ‘who?’ 시리즈이다. 어린이 분야 1위를 지키고 있는 ‘스티브 잡스’ 편은 2011년 올해에만 2만부가 넘게 팔렸으며, ‘who?’ 시리즈 역시 2011년 한 해 동안 42만부가 넘게 팔리는 기염을 토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이처럼 전국 학부모들의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who?’ 시리즈의 성공 뒤에는 위인들의 생애를 실감나게 그리기 위해 애쓴 ‘스튜디오 청비’가 있었다.

만화 창작 집단 ‘스튜디오 청비’는 스티브 잡스나 손정의처럼 세상을 바꾼 인물들의 삶을 더 새롭게, 더 재미있게, 더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해 2년이나 ‘who?’에 매진했다. 굴곡 많은 인물들의 생을 쫓으며 그들의 갈등과 고뇌, 성공과 벅찬 환희를 경험했다. 어린이들이 큰 꿈을 품고 열정을 키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컷, 한 컷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 2년여의 시간동안 who의 31명 위인들의 삶을 함께한 스튜디오 청비의 정현희 작가로부터 ‘who?’의 성공 비결과 뒷이야기를 들어보자.

→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인물들을 그리다보면 옷이나 배경 등 고증해야 할 것들이 훨씬 많을 텐데 힘든 점은 없었나?

저희가 완벽하게 그 인물들을 이해할 순 없기 때문에 자료 조사를 많이 해야 되는데, 일단 그 사람의 시대적 배경이나 그 당시 입고 있었던 옷 등 인터넷으로 자료 조사를 해요. 더 자세한 조사를 위해서 도서관을 이용하거나 다산 편집부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여러 분들이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작업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who?시리즈’ 30권을 작업하는데 총 2년이 걸렸어요. 그 긴 시간동안 작업했으니 한 권 한 권 모두 다 애착이 갑니다. 특히 ‘제인 구달’을 작업할 때 자료 조사를 잘못하는 바람에 절반 정도를 수정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정말 힘들어서 그런지 그 때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요.

→ 가장 그리기 쉬웠던 책과 힘들었던 책은?

가장 그리기 쉬웠던 책은 ‘찰스 다윈’이었어요. 실제로 호기심이 많았던 찰스 다윈이 세계 곳곳을 탐험했기 때문에 작업을 하면서 할 일은 많았지만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캐릭터도 꽤 귀엽게 잘 그려진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거든요.

반면 가장 그리기 어려웠던 책은 빌 게이츠에요. 다른 인물들에 비해 인생이 굴곡 없이 평탄하게 흘러가다 보니 작업할 때 재미는 없었어요. 아무래도 그림을 그릴 때는 그 인물의 인생 스토리를 쫓아가다보니 사건 사고가 많은 굴곡 많은 이야기가 그림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도 재미있습니다. 솔직히 너무 평탄하게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인생은 재미가 없고 지루하거든요.



→ 만화를 그리는 작업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면?

스토리를 받으면 A4용지 한 장에 칸을 나눠요. 나눈 후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펜을 입힌 후에 지우개질을 하는 겁니다. 그 이후에 컴퓨터로 컬러를 입혀서 채색을 하고 말풍선을 붙이는 작업을 합니다.

→ 가장 최근에 작업하신 인물은 어떤 인물이며, 그 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

손정의에요.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미국, 일본에서 ‘동양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릴 만큼 IT에 관해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거든요. 제가 알기에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보다 돈이 더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 who? 시리즈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내에서 인정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해외에서 인기가 많다고 하면 뿌듯한 건 사실이에요. 제 생각에는 그림체가 기존의 일본 만화와 양식이 달라서 이 점에 매력을 느꼈을 수도 있겠고 스토리 진행 방식의 차이, 새로운 인물 선정이 주요했던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 다산북스가 펴낸 31권째 who? 시리즈는 제2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리는 ‘한국이 낳은 IT 천재’ 손정의 소프트 뱅크 사장이다. 손정의 사장은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스티브 잡스를 뒤이을 인물’에 뽑혔다.

이렇듯 세계인물교양만화 who? 시리즈 안에는 지구촌 31명의 글로벌 리더들의 성장과정과 감동적인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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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1월8일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300년이 되던 날 유난히 몸이 약하고 몸집이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뒤를 이은 천재 물리학자 윌리엄 스티븐 호킹이다.


‘who?시리즈-스티븐 호킹’(다산 어린이/대표 김선식)을 보면 그는 또래에 비해 키가 작고 말투도 어눌해 친구들에게 늘 놀림을 당했다. 그러나 항상 쾌활했고 눈에서는 빛이 나는 총명한 아이였다. 하늘의 수많은 별과 우주에 대해 관심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기계 원리에도 호기심이 많아 어린 시절 ‘리틀 아인슈타인’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내가 과학자를 꿈꾸게 된 발판은 호기심이었다”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스티븐 호킹은 호기심이 많았다. 비록 어린 시절 학교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케임브리지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준비를 하고 있던 1963년, 호킹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몸속의 운동신경이 차례로 파괴되어 전신이 뒤틀리는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1∼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것. 이때 그의 나이 21살이었다. 호킹은 책 한 권 손에 쥘 수 없다는 사실에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가족과 연인 제인의 격려와 사랑에 호킹은 다시 학업과 연구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오히려 그의 학문 인생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비록 그의 병세는 더 악화되었지만 호킹은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는 연구에 매진한 끝에 1968년 ‘특이점 정리’를 발표한다. 호킹은 우주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어떤 계기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당시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 외에도 블랙홀은 빛보다 빠른 속도의 입자를 방출하며 차츰 줄어들다가 마침내 폭발하여 증발한다는 ‘블랙홀 증발’과 ‘양자우주론’까지 3개의 혁명적 이론을 제시했다.

호킹의 새로운 발견들은 전 세계 물리학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을 불러왔지만 결국 우수한 연구라는 평을 들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서른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영국 왕립 학회의 회원으로 임명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시련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1985년 폐렴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기관지를 절개해 파이프를 가슴에 꽂는 수술을 한 뒤에야 그는 호흡을 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그는 휠체어에 부착된 고성능 음성합성기를 통해서 대화를 한다. 신체 중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두 개의 손가락으로 컴퓨터를 작동시켜 강의도 하고, 글을 받아쓰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내 생애 가장 큰 업적은 살아있는 것이다”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로 하여금 더 열심히 살게 하고, 더 많은 일을 하도록 했다” -스티븐 호킹

호킹은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뒤부터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참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주를 연구하는 데는 건강한 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어느 강연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루게릭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그 치료법 또한 개발되지 않아 호킹에게는 그리 희망적인 상황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는 연구를 끝낼 마음이 없는 듯하다. 그는 우주의 비밀을 찾아 끝나지 않을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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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진정으로 럭셔리한 스타일이라면 편해야 한다. 편하지 않다면 럭셔리 한 것이 아니다”
“패션은 복장에만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패션은 하늘에도 거리에도 있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이자 늘 새롭게 일어나는 그 무엇이다”
-모든 여성의 로망 ‘샤넬룩’을 탄생시킨 코코 샤넬의 명언들.

● 여성 패션의 상징 ‘샤넬’

‘who? 시리즈-코코 샤넬’(다산 어린이/대표 김선식)에서는 패션 제국 ‘샤넬’을 세운 코코 샤넬의 일과 사랑 등 그녀가 살아있는 전설이 되기까지의 상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성이 차별받던 시절, 여성의 힘으로 패션계에서 대성공을 거둔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 그녀는 ‘코코’라는 별칭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샤넬은 수녀원에 보내졌다. 얌전하고 남성에게 복종하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성에 차지 않았다. 결국 10대 후반 수녀원을 탈출한 샤넬은 한 의상실에서 보조양재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불렀다. 당시 불렀던 ‘코코리코’,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 같은 노래를 하며 인기를 모은 샤넬은 노래 가사에 나오는 강아지 이름인 ‘코코’라는 애칭을 얻게 된다.

그러나 당시 클럽 가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샤넬은 의상실에서 해고당하고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린다. 샤넬은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의상실에 취직하지 않는 대신 직접 가게를 꾸려 나가기 시작했다.

샤넬은 여성들의 옷은 여성에게 편하고 여성이 생각하기에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선 몸을 꽉 조여 억압했던 코르셋에서 여성들을 해방시켰다. 또 편하고 활동이 자유로운 여성용 바지를 만들었다. 땅에 닿던 긴 치마를 과감히 잘라 무릎까지 올라가는 치마를 선보였다. 진정으로 럭셔리한 스타일은 모름지기 편해야 한다는 샤넬의 생각은 여성 의상의 혁명을 일으켰다.

훗날 샤넬이 탄생시킨 리틀 블랙 드레스는 상복에나 어울린다고 여겼던 검은색을 여성복으로 써 파격적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별다른 장식은 물론 깃과 단추도 없는 이 검정 드레스는 또 하나의 혁명으로 평가되며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샤넬의 대표적인 아이템인 핸드백은 어깨끈을 사용함으로 여성의 손을 핸드백에서 자유롭게 만들어줬다. 그 외에도 남성복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샤넬 투피스와 샤넬 수트 등은 20세기 초반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패션의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평을 들었다.
 


▲ 코코 샤넬의 대표적인 여성복 '리틀 블랙 드레스'.

1921년 5월5일 사각 유리병에 담긴 파격적인 향의 향수 샤넬 NO.5가 세상에 나왔다. 요란하게 치장한 귀부인들의 옷과 같은 향수병의 외형을 버리고, 샤넬은 간편하고 실용적인 사각형 병을 고집했다. 이 향수는 당시 투박한 이름과 모양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독특한 샤넬 NO.5의 향기는 특히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수녀원에 버려졌던 소녀가 마흔밖에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전 세계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샤넬 NO.5는 코코 샤넬이란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렸다.





● 살아있는 전설의 부활, 화려한 컴백

샤넬의 일생은 ‘사랑하고 일했다’라고 표현할 만큼 많은 사랑을 했고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러나 어느덧 칠순의 할머니가 된 샤넬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며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샤넬은 신예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올의 ‘뉴룩’에 발끈했다. ‘뉴룩’은 풍만한 가슴을 강조한 상의와 라인을 넣어 풍성하게 디자인 된 스커트로 여성의 몸매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의상이었다. 코코 샤넬은 ‘뉴룩’에 대해 여자를 남자의 시각으로 가둬 놓았던 과거의 유물이라며 비난, 다시 의상실을 열기로 결심한다.

이윽고 쇼가 열렸다. 샤넬의 재기를 기대하는 2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패션쇼는 과거에 집착한 형편없는 패션이란 혹평을 들으며 끝이 났다.

샤넬은 자신을 향한 저평가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컬렉션은 실패로 끝났지만 코코 샤넬은 또 다시 열정을 불사르며 세상을 놀라게 할 디자인을 위해 수백 번의 스케치를 했다. 그렇게 냉정한 평가를 받았던 복귀 패션쇼 이후 1년이 지난 어느 날, 일흔 살이 넘은 디자이너 샤넬은 ‘투 컬러 재킷’과 ‘투 컬러 펌프스’라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두 가지 색상을 적절히 배치해 세련된 아름다움을 표현한 샤넬의 작품들은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디자인이었다.

샤넬은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당당히 도전했고 화려한 복귀를 세상에 알렸다.

‘유행은 일시적이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고 말한 샤넬은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말대로 샤넬의 스타일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코코 샤넬은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이자, 편리한 복장으로 여성들을 억압된 삶에서 해방시킨 혁명가였으며 여성의 몸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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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의 초라함이 없다면, 따스한 봄날의 찬란함도 결코 없으리.

불운은 나를 단련시켰고 내 마음을 더욱 굳세게 한다.

-1942년 8월 호치민의 옥중일기 중 ‘스스로 권면하며’


●호치민의 소원은 베트남의 독립 또 독립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1947년 발표한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의 일부.

베트남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 독립을 이룬 후에는 또 다시 세계 강대국에 의해 남과 북으로 나뉜 불운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베트남을 밝힌 등불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호치민이다.

또 다른 한 사람. 오직 조국 독립의 열망으로 일평생을 살았던 사람.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이다. 호치민은 프랑스의 압제에, 김구 선생은 일본의 탄압에 절망하며 어린 시절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who? 시리즈-호치민’(다산어린이/대표 김선식)편에는 작지만 강했던, 조국의 독립에는 불같았지만 베트남 인민에겐 한없이 인자했던 그의 생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아무리 무서운 상대라도 이길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며 호치민은 용기를 길렀고 프랑스와 러시아 등에서 학문을 익혔다. 이것은 훗날 수백 명의 쟁쟁한 유럽인들 앞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위한 연설을 당당하게 해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준다.

어린 시절 농민 시위를 도왔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후에도 결코 낙담하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에 눈을 돌리는 계기로 삼았을 수 있었던 것도 호치민에게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기로 시작한 세계 여행, 사회주의 운동에 불 지피다

호치민은 1911년 ‘바(Ba)’라는 가명으로 프랑스 증기선의 요리사 자리를 얻어 3년 이상을 선원으로 지냈다. 그동안 아프리카와 보스톤이나 뉴욕 등 미국의 도시를 여행했고 런던에서 생활했다가 프랑스로 옮겨갔다. 그는 프랑스에서 ‘구엔 아이 쿡’(‘애국자 구엔’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주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특히 프랑스에 사는 베트남인들을 조직화하고 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베르사유 평화회의에 모인 강대국 대표들 앞으로 8개 조항의 탄원서를 보냈다. 탄원서에서 호치민은 프랑스 식민정권이 인도차이나와 식민지 국민들에게 통치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줄 것을 요구했다. 이 일로 호치민은 베트남인들에게 영웅이 되었다.

호치민은 세계에서 최강에 꼽히는 국가들과 전쟁에서 한번도 지지 않았다. 프랑스에 이어 미국과 벌인 전쟁에서도 호치민은 물러서지 않고 대등한 싸움을 벌였다. 불패의 국가 미국이 베트남에서는 상당한 곤란을 겪었다.

이 전쟁 때문에 출구전략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미국에게는 베트남전은 승패 여부를 떠나 ‘시련’이었다.

출구전략 (Exit strategy, 出口戰略)이란 군사적으로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쟁을 끝내는 전략을 말한다. 나중에 이 용어는 경기침체기에 경기를 부양하기 위하여 취하였던 각종 완화정책을 거둬들이는 전략을 뜻하는 경제용어가 되어 버렸다.

●조국 통일을 끝내 보지 못하다

호치민은 그토록 열망했던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1969년 9월2일 눈을 감았다. 그가 손으로 쓴 유언장에는 ‘내가 죽은 후에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 시신은 화장해달라’고 적혀 있었다. 일생 자신의 부와 명예보다는 민족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의 언론은 호치민 부고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호치민이 죽는 날까지 적군으로 싸웠던 미국의 언론도 다음과 같이 썼다.

‘베트남과 가장 마지막까지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우리 미국 사람들도 작고 마른 호 아저씨에게 숭배와 존경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시사 잡지 ‘뉴욕 타임지’

또 다른 미국의 시사 잡지 ‘타임’은 “호치민! 이 지구상의 어떠한 민족 지도자도 적의 총칼 앞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집요하게 맞선 인물은 없었다”라고 그의 높은 뜻을 기리는 글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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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의 부자 1위에 선정, 투자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위대한 투자가로 칭송받고 있는 ‘who? 시리즈-워렌 버핏’(다산 어린이/대표 김선식). 그는 11살 때부터 주식 투자를 시작해 청소년 시절에 스스로 돈을 벌어 납세 신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시장을 보는 정확한 안목과 냉철한 판단력 덕분에 큰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다. 세계인이 주목하는 워렌 버핏의 안목과 판단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 느리게 관찰하고 과학적으로 계획하고 빠르게 실천

어린 버핏은 껌과 콜라를 팔아 이익을 남겼다. 고작 6살이었다. 당시 버핏은 어떤 물건이 잘 팔리고 이익은 또 얼마인지 주의 깊게 관찰했다. 예를 들면, 똑같은 콜라라도 자판기에서 팔린 것과 가게에서 팔린 것을 따로 나눠 어떤 물건이 더 잘 팔리는지 꼼꼼하게 따져봤다. 그에게 ‘우연한 발견’이나 ‘행운’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실패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그는 청소년 시절 신문 배달을 했다. 이때 버핏은 자신의 배달 구역을 연구해 가장 빨리 신문을 배달할 수 있는 지름길을 개발했다. 그러자 그는 다른 신문 배달원보다 더 많은 신문을 배달할 수 있게 된다. 이후 그 능력을 인정받아 뉴욕의 웨스트체스터라는 거대한 배달 구역을 얻게 된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배달 구역을 연구한 덕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배달 구역이 광대해지자 웨스트체스터만 남기고 다른 배달 구역을 정리하는 과감성도 보여줬다. 무엇이 더 이익인지 계산한 후 욕심내지 않고 포기하는 것. 버핏의 냉철한 판단력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 인내하고 검소하고 겸손하게

처음 투자를 시작한 11살에 산 주식이 한 주당 3달러씩 오르자 주식을 팔았다. 나중에 그 주식의 가격은 165달러나 올랐다. 이 경험은 훗날 주식 투자에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버핏은 평생 흔들림 없이 인내하고 긴 안목으로 기다리면서 투자해야 함을 늘 강조한다.

투자의 귀재인 그는 부자임에도 소박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집은 높은 담도 없으며 경비용 감시 카메라도 없는 평범한 집이다. 또 비싼 술, 고급 음료보다 값싼 콜라를 즐겨 마신다. 워렌의 이러한 검소함은 겸손함과 손잡고 있다. 이웃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고, 그가 콜라와 햄버거를 즐겨 먹는 이유 역시 서민과 어울리는 것을 즐겨하는 까닭이다.


빌 게이츠와 운명적 만남

버핏은 1991년 빌 게이츠를 처음 만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이자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부자가 된 빌 게이츠. 두 사람은 25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서로 잘 통하는 친구가 되었다. 특히 빌 게이츠의 자선 활동에 감명 받은 버핏은 비로소 진정한 부자란 얼마를 소유했느냐가 아닌, 그 돈을 조건 없이 세상에 나눌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깨닫는다. 버핏은 빌 게이츠가 운영하는 자선 재단에 370억 달러를 기부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43조 원 정도 되는 큰 돈이었다. 버핏은 빌게이츠와 함께 재벌들의 기부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었다.


특히 버핏은 부자증세, 이른바 ‘버핏세’를 주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미국이 경기 침체와 재정 적자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버핏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재정에 힘을 싣자고 주장했다.

오마하의 사람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투자가 아닌,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투자라는 올바른 길을 제시한 워렌 버핏을 존경한다. 그들은 부를 나눌 줄 아는 부자, 평생 검소한 생활을 즐기는 그를 가리켜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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