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천재 시인 '허난설헌'(왼쪽)과 로댕의 제자이며
뛰어난 예술가였던 ‘까미유 끌로델’


16세기 조선에서 태어나 스물일곱 짧은 생을 살다 간 천재시인 허난설헌. 빼어난 미모, 탁월한 지적능력으로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자로 평가받는 사람, 왕실의 공주라 해도 남성과 대등한 글공부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시절에 동생 허균과 함께 시를 배우고, 여덟 살의 나이에 ‘백옥루 상량문’을 지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녀가 남긴 빼어난 시편들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전해져 수많은 이들을 매료시켰고 지금까지도 중국과 일본에서는 허난설헌 연구학회가 이어질 만큼 문학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닫힌 땅에서 그녀의 삶은 처절한 비애의 연속이었다. 후대의 실학자 박지원마저 “아녀자가 시를 씀은 옳지 못하다. 재주 있는 여자들은 난설헌의 삶을 경종으로 삼으라” 했을 만큼, 남성중심의 조선에서는 철저히 버려진 이름이었다.


절벽같은 생 앞에 꼿꼿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


그 비운의 천재시인, ‘난설헌’(다산북스/대표 김선식)이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우리 시대 한 여성작가의 가슴에서 다시 태어났다. 77세의 작가, 최문희.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살았지만 자기 안의 창작의 불꽃을 끝내 외면할 수 없어 50이 넘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 뒤늦게 시작한 소설이 혹여 가족들에게 불편을 끼칠까 두려워 자신의 서재 하나 없이 작은 상 하나를 들고 다니며 숨죽여 소설을 써왔다.

남성 중심의 닫힌 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가슴속에 활화산을 품고 살았던 난설헌의 삶을 만나고 소설을 쓰면서 소설가 최문희는 한 인간으로, 여자로서 진정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되었고, 허난설헌이야말로 우리 역사가 잊고 있던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손가락으로 바윗돌에 새기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는 ‘혼불’의 작가 최명희처럼, 꼼꼼하게 바느질하듯 허난설헌의 일생을 한땀한땀 직조해냈다.

“한 여자의 인생을 이만큼 꼼꼼한 바느질 솜씨로 이야기의 육체를 완성하긴 쉽지 않다.”(박범신 소설가)

“내 유전자 속에 난설헌의 슬픔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전경린 소설가)

“허난설헌은 두 번 태어났다. 사백여 년 전에 한 번, 작가 최문희에 의해 또 한 번”(하성란 소설가) 등등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으며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으며, 2011년 수많은 문학상 수상작 중 최단기간 5만부를 돌파하며 대중적 인기까지 동시에 증명하였다.

이러한 돌풍 속에 소설 난설헌의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1박2일에서 허난설헌의 생가를 방문하여 소설 난설헌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 소설 '난설헌'의 저자 최문희 씨

세상 모든 여자들의 슬픔이자 꿈의 이름, 난설헌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이라고 외쳤던 여인, 그녀는 서릿발처럼 모진 시집의 냉대, 자신에게 등 돌린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 친정을 향한 애달픈 그리움, 어린 자식들을 모두 잃고 흘리는 피울음에도, 원망이나 분노로 자신의 예술혼과 자존감을 흐트리지 않았다. 어떤 고통도 난설헌의 영혼을 마모시키지 못했다.

그런 고통의 마디들은 난설헌으로 하여금 한 줄의 시어(詩語)를 붙들게 만들었고, 곡기를 끊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그 시를 가슴에 품고 스러져갔다. 그 광경은 억압받은 영혼이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자존이며, 여자 천재시인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그래서 난설헌의 자유로운 혼과 피는 까미유 끌로델, 시몬 베이유, 나혜석, 전혜린과 닮아 있다.

모든 여자의 아픔을 가슴팍에 끌어안은 채, 못 다한 그리움을 시로써 불태워 자신을 정화시킨 여자, 여자의 재능과 자존감을 용납하지 않는 혹독한 시대에 태산 같은 슬픔을 이고, 절벽 같은 생 앞에서도 꼿꼿하게 자신의 생을 밀고 간 여자. 그래서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 누구의 아내로, 누구의 엄마로, 아니 하나의 여자로 산다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허난설헌이다.

난설헌의 소설을 읽은 밤은 절대 눈가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눈물이 여자들에게 뜨거운 생의 의지를 밝혀주고 새로운 감동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모든 고통으로부터, 외로움으로부터, 집착으로부터, 오로지 자신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그것을 보여준 여자. 소설 ‘난설헌’은 그녀의 삶을 가장 섬세한 문체의 힘으로 보여준다.

소설 ‘난설헌’은 세상 모든 여자들의 슬픔과 꿈을 간직한 소설이다. 동시에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힘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스물일곱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우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자, 난설헌이 올 겨울 세상 모든 여자들의 가슴속에 다시 뜨겁게 살아온다.

좋은 책의 발견 북스커버리 cbci 서하나 jindalae@cbcnews.co.kr





Posted by 좋은 책의 발견 (CBC미디어) 북스커버리

▲ 서울 강남의 한 대형서점 중앙에 진열되어 있는 소설 '난설헌'


조선의 아름다운 여인 ‘난설헌’(다산책방/대표 김선식)이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난설헌 신드롬이라고 불릴만하다. 만약 조선시대에 라디오나 텔레비전, 인터넷과 같은 매체가 있었다면 난설헌은 ‘나꼼수’ 뺨 칠만큼 신드롬을 일으켰을지 모를 일이다.

특히 난설헌이 살았던 조선 중기는 유교적인 여성관을 여성에게 강요하던 시기로, 여성은 언제나 가부장의 지배와 보호 아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 존재였다. “여자의 소리가 담을 넘으면 안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와 같은 속담이나 속언들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나 말 타고 들판을 달리는 남정네보다 더 호방하고 자의식이 강했던 난설헌은 결혼하지 않았을 때는 부모를 따르고 결혼하면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의 굴레와 칠거지악의 억압 속에서 자신의 답답함과 슬픔을 분출할 통로가 필요했다.

●난설헌의 ‘저항정신’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남편의 출세를 가로막는다!’, ‘자식도 잡아먹은 여자다!’ 난설헌의 삶을 옥죄는 것 투성이었다. 그녀에게 유일한 돌파구는 ‘시’를 쓰는 것이었다. 당시 난설헌이 시를 쓴다는 것은 곧 집안의 법도를 어기는 것이며 울타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난설헌은 고부간의 갈등, 남편과의 불화, 두 아이의 죽음, 불운한 시대 등의 한을 자신의 시에 표백해 나갔다.

신랄한 정치 풍자 방송 ‘나꼼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도 방송과 언론을 장악한 정권에 불만을 표출할 통로가 필요했는데, ‘나꼼수’가 혜성처럼 등장해 기꺼이 정치적 담론과 놀이의 장이 되어 준 것이 아닌가.

“난설헌이라…참으로 대단한 자기애를 지녔구나. 자고로 남자나 여자나 자아가 강하면 외로운 법…아직은 어린 나이인데 아름다운 난초의 초췌해지는 추이를 그린 것은 너무 조숙함이 아닌가.”

이름 없는 여인으로 살아야 마땅한 시대의 엄혹한 규제와 타협하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시작(詩作)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난설헌. 여성들에게 순결 이데올로기와 남존여비, 가부장제 등을 강요하는 시대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한 난설헌은 오늘날 최고의 페미니스트이며 조선 여성 중 독자적인 성취를 이룬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난설헌의 詩는 ‘서민’ 코드

난설헌은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조선시대 최고의 문벌가인 안동 김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지만 다른 양반가 여인들이 연정시나 규방가사를 노래한 반면 난설헌은 민중의 삶과 선계를 동시에 시에 담으려 노력했다. 난설헌은 자신과 신분이 다른 소외된 사람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여기지 않았다.

순결 이데올로기를 비웃듯 파격적인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쓰는가 하면 민초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난설헌의 시는 ‘나꼼수’의 풍자적 서민 코드와 유사하다.

한껏 폼 잡으며 복지를 논하고 서민과 가장 밀접해야 할 정치는 서민과 가장 동떨어진 영역이 되었다. 그러나 ‘나꼼수’는 저 위에 있던 ‘정치’를 주저 없이 끌어내렸다. 유사한 정치 비평 프로그램과 달리 우아 떨지 않았고 꾸밈없고 솔직했다. 난설헌의 시에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함과 발랄함이 오버랩된다.


●허난설헌의 시 


사는 집 장간리 마을

장간리 길을 오가네

꽃가지 꺾어 님께 묻네

누가 더 좋나요

-장간행1 ‘가거’


간밤에 남풍이 불어

배는 파수로 가고

북에서 온 사람 만나니

님께서는 양자강에 계신다하네

-장간행2 ‘작야’


이웃집 친구와 그네뛰기 하네

허리묶고 수건매고 신선을 배운다

바람은 불어 오색새끼줄 하늘을 날고

패물소리 울리는 우거진 버드나무

-추천사


그네뛰기 끝내고 꽃신을 신고

숨가빠 말 못하고 층계에 섰네

매미 날개 같은 적삼에 땀이 촉촉히 베여

떨어진 비녀 주워 달라는 말도 못하네

-추천사 2


긴 둑 십리길에 휘늘어진 버드나무

물 건너 연꽃 향기 나그네 옷에 베이네

간밤 호남엔 달도 밝아

여인네 다투어 사랑 노래 부르네

-둑 길을 걸으며

Posted by 좋은 책의 발견 (CBC미디어) 북스커버리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 소설 ‘난설헌’ 중

“내 가장 큰 죄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핏줄로 태어난 것이다.” – 소설 ‘덕혜옹주’ 중

허난설헌 초상화(왼쪽)·덕혜옹주 실물 사진

● 시대가 담지 못한 여인, 난설헌과 덕혜옹주

시리도록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다. 높은 담 안에서 귀도 눈도 입도 다물고 살아가야 했던 여인. 소설로 복원한 ‘난설헌’(다산책방/ 대표 김선식)과 ‘덕혜옹주’(다산책방/대표 김선식)의 삶이 오늘날 많은 이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결혼하지 않았을 때는 부모를 따르고 결혼하면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숨죽여 살아야 했던 난설헌. 조선의 아녀자의 분수란 그저 죽어지내는 것이 조선이 말하는 덕(德)이고 지(知)인 것인지,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법도와 예절이 쇠 추를 단 듯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조선은 난설헌의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불온시하고, 금기시했다. 시의 말미에 ‘난설헌’이라고 당호를 적었지만, 조선은 이름 없이 살아가는 여인들 속에서 그녀를 ‘난설헌’이라고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다. 남존여비의 지엄한 법도 아래 조선은 말 타고 들판을 달리는 남정네보다 어쩌면 더 호방한 여인이었던 난설헌을 품지 못했다.

그리고 적국의 땅에서 이름 없는 황녀로 살아야 했던 또 다른 조선의 여인.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족이며 한때 조선 민중의 희망이었던 덕혜옹주. 그녀는 덕수궁의 꽃으로 태어났으나 한 번도 그에 걸맞게 살지 못했다. 황족으로서 부모의 죽음과 조국의 패망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지켜낼 수 없다는 비참함과 절망감에 괴로워했던 덕혜였다.

13살에 강제로 일본의 볼모로 간 이후 덕혜는 조국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몸서리쳤다. 그러나 일본의 절대 권력에 의해 일본인 귀족과 정략결혼을 하자 조국은 그녀를 잊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녀는 조선을 살릴 마지막 끈이 아니었다. 일본의 치밀한 한민족 말살 정책에 의해 한 나라의 공주마저 유린의 대상이 되는 처참한 시대는 덕혜를 방치했다.

난설헌이 조선의 유교적 여성상에 갇혀 일생 자유롭지 못했다면 덕혜옹주는 겹겹으로 감시하던 일제의 번개칼 같은 감시와 강포에 늘 떨어야 했다.

소설 '난설헌'(왼쪽)과 '덕혜옹주' 표지


●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살림살이보다 서책을 가까이 하는 딸인 난설헌을 부모는 질책하거나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결혼 이전의 초희는 동생 허균과 문장을 논하고, 함께 시를 해석했고 오라비들의 책갈피를 기웃거리며 글을 즐겨 읽고 썼다. 그러나 결혼 이후의 난설헌은 고된 시집살이에 더해 밖으로만 도는 남편과의 불화로 깊은 나락에 빠졌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외모, 지나친 사려깊음, 넘치는 다정함이 부담스러웠던 것인가. 남편 성립은 결혼 생활 내내 따스한 눈길도, 마음도 주지 않았다. 모진 시집살이에도 흐트러짐 없이 자신을 지키며 서책을 끼고 사는 난설헌에 대해 사사건건 어깃장을 놨다.

여성에게 유난히 엄정한 조선의 현실 질서와 불화하는 난설헌의 한(恨)은 소통하지 못하는 남편의 아내가 된 것이었다. 냉랭한 별채에 갇혀 먼 데를 바라보는 난설헌의 야윈 모습은 적국에 홀로 남겨진 덕혜와 닮은 구석이 많다.

덕혜는 원치 않는 결혼을 했고, 적국의 피가 절반이나 흐르는 자식을 낳았다. 그것은 황녀로서 수치였고 불행의 시작이었다. 난설헌이 두 아이를 연이어 잃은 아픔에 생에 대한 모든 미련을 떨쳐버린 것처럼 덕혜 자신도 딸 정혜를 잃고 점점 자신의 운명을 비극적인 결혼과 현실 속에 굴복했다.

총명한 아이라, 너무 이치가 밝아 마음을 다칠까 염려했던 고종의 말은 결국 현실이 된 것이다. 덕혜 옹주는 한시도 궁을 떠나 살지 못했고, 일국의 공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못했다. 딸 정혜가 “나는 조센징이 아니어요. 나는 일본인이어요. 날 정혜라 부르지 말아요”라며 반쪽 조선인의 정체성마저 부인할 때도 덕혜는 자신이 조선의 황녀임을 더욱 가슴에 새기곤 했다. 그저 그녀는 자신의 나라 대한민국에 돌아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소설 ‘덕혜옹주’ 중에서

강풍이 불면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것인가. 덕혜는 서슬 퍼런 일본의 압제와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 수심과 슬픔이 가득한 눈빛으로 먼 데만 응시했다. 그곳은 자신의 나라 대한민국이었다.

 

● 뛰어난 시적 감수성

‘초희야 너무 영민함도 너무 다정함도 지나친 나약함도 이 세상에 배겨나지 못하는 것을, 어쩌자고 머릿속에 촛불을 켜고 산다더냐.’ – 소설 ‘난설헌’에서 어머니 김씨의 말

 

고가라서 낮이건만 인적도 없고

뽕나무 위에서 부엉이만 우네

까칠한 바위 옷 층계에 돋고

참새가 빈 다락에 깃을 쳤다네

전에는 말과 수레 머물더니만

지금은 여우의 소굴이 되어

달관의 분의 말씀 이제 알겠소

부귀는 나의 몫이 아니란 것을

– 불행한 자신의 생을 시로 승화시킨 난설헌

 

모락모락 모락모락

검은 연기가

하늘궁전에 올라가면

하늘의 하느님 연기가 매워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어.

– ‘비’,  덕혜옹주가 일본어로 쓴 동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고 여자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가면 안 된다며 난설헌의 입에 재갈을 물렸으나 난설헌은 꽃다운 스물일곱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묵묵히 작품을 남겼다. 또한 나라 잃은 민족의 ‘상실’의 아픔과 슬픔을 덕혜는 문학적으로 풀어냈다.

여성이 존중받을 수 없었던 시대에 시혼(詩魂)을 불태우며 자신을 일으키고 인내했던 두 여인은 최문희 작가와 권비영 작가를 통해 오롯이 우리 곁에 다시 살아났다.

Posted by 좋은 책의 발견 (CBC미디어) 북스커버리
“내 어찌 이 땅에 아녀자로 태어나 이 작은 틀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던고. 죽어 다시 태어나면 저 너른 중원천지를 말 타고 달리는 남정네로 태어나리라.”


천재도 과하면 독이 되는 것인지, 조선 중기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은 그 독(毒)으로 얻은 빛난 대가로 오랏줄로 꽁꽁 묶여 냉랭한 별채에 갇히고 소외당했다. ‘난설헌’(다산책방 대표 김선식)은 이런 불우한 천재 허난설헌의 일생을 담아낸 작품이다.
 


시인으로서의 생과 여자로서의 생. 이 두가지 행로 어디에도 난설헌은 오롯이 자신의 이름으로 살지 못했다. 남편이 햇빛 찬란한 양지밭과 같지 않았기에 여자로서의 생에 늘 잿빛 어둠이 길게 드리웠고, 시인으로서도 그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해 시는 늘 한줌의 그리움으로 애달팠다.


소설 속에는 27년 짧은 생 동안 명주실을 뽑아내듯 써내려간 난설헌의 시들이 알알이 박혀있다. 종이와 붓만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써 내려간 시는 오직 여인에게만 한없이 가혹했던 시대를 향한 부르짖음처럼 여겨졌다.
 

양반가의 여성에게조차 글을 익히도록 하지 않았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시를 쓰는 며느리가 달갑지 않았던 시어머니.

8세 때 이미 신동으로 소문난 아내 곁에서 별다른 재기 없는 자신을 자학하며 바깥으로 돌기만 하는 통 좁은 남편. 어깃장으로 서로 할퀴는 부부사이. 애뜻함이든 미움이든 눈길은 어긋나고, 난설헌의 진심은 반사되고 부서지기만 했다.
 


명주실을 뽑아내듯 영혼의 부르짖음으로 써내려갔던 시


난설헌은 꽃다운 젊은 시절 15세 조혼을 한 뒤 엄격한 법도에 눌려 일생 문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에 더해 시집살이의 고됨은 차라리 사회활동이 자유롭고 마음껏 자연과 창(唱)과 문(文)을 벗 삼아 사는 기녀의 삶이 낫겠다 싶다. 사간헌의 영수인 대사간인 아버지 허엽과 따르던 오빠 허봉의 잇따른 객사로도 부족해 허난설헌은 딸과 아들을 차례로 잃었다.

살림은 뒷전이고 서책이나 팔랑거리며 기녀들이나 하는 시나 나불대는 어미에게 물들 수 있다는 시어미의 엄혹한 규제 속에 제 자식 한 번 품에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던 난설헌이었다. 이때의 슬픔을 그녀는 ‘곡자(哭子)’’라는 시로 남겨놓았다.

지난해 사랑하는 딸 여의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 땅이여

두 무덤이 마주보고 있구나

백양나무에 소슬한 바람 불고

도깨비불은 무덤가 나무 밝히네

종이돈 살라 너희 혼을 부르고

정화수를 올려 제사를 지낸다

너희 넋은 응당 오누이임을 알지니

밤마다 서로 어울려 놀겠지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어찌 잘 크기를 바랄 수 있으리오

부질없이 황대사를 읊조리고

피눈물 흘리며 소리 죽여 슬퍼한다


- 허난설헌의 시 ‘곡자(哭子)’ -

 

두 손을 휘저어 붙잡으려 하면 조금 전까지 온기로 느껴지던 아이들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손에 잡힐 듯 다가오지만 손가락 사이로 물처럼 새나가버리는 아이들이 그미의 가슴에 사무친다. 후드득, 뺨을 적시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그는 눈을 뜨고 일어나 서안을 끌어당긴다. 어느새 먹물이 말라버린 붓은 빗금 한 획도 그리지 못하고 마른다. 물처럼 새고, 먹물같이 사위는 것들…뜨겁고도 세찬 한숨이 토해진다. -소설 ‘난설헌’ 중


 

 

소설 '난설헌'으로 제1회 혼불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최문희씨.


소설 ‘난설헌’을 통해 다시 태어난 허난설헌. 저자 최문희 씨는 가슴에 돌덩이처럼 얹히며 마음에 박혀버린 허난설헌을 불러냈다. 저자는 작품을 쓰는 내내 난설헌과 소통했던 날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간다고 고백했다. 귓전에 속삭이던 말들이 오롯이 한 권의 소설로 남았다고 전했다. 저자는 ‘난설헌’으로 혼불문학상을 탔다.

난설헌의 세 가지 한(恨)…여자, 조선, 그리고 남편의 아내

난설헌의 너무 영민함도, 너무 다정함도, 지나친 나약함도 닫힌 세상이었던 조선은 배겨나지 못한 듯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염하고 방만한 백일홍의 이미지와 단아하고 청초한 난설헌의 모습이 자주 오버랩된다. 껍질이 없어 미끄러운 나무 백일홍은 있는 그대로 발가벗고 서 있다.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이름이 없는 여성이란 뜻인지. 칠거지악으로 겹겹이 억압하고 수 겹의 속곳으로 정절을 강요당하는 조선의 여인과 백일홍이 대비된다.  아련히 백일홍을 바라보는 난설헌의 눈빛이 선연하다. 규제와 억제된 삶의 한 모서리를 허물고 싶은 눈빛이다.

 

Posted by 좋은 책의 발견 (CBC미디어) 북스커버리